잠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늘었다. 전에는 이영도 소설의 도깨비마냥 꿈을 꾸는게 좋았지만 이제 왜 이 꿈을 저 꿈과 같은 단어로 사용하는지 알겠다. 그리고 이명도 줄일겸 줄어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더 늘지는 않게 이어폰도 그만 사용하고. 사실은 음악을 거의 안 듣고 있다. 의식적으로. 기타도 더 많이 치게 되고. 아예 음악을 안 듣다보니까 비루한 내 목소리와 까랑까랑한 기타로 내는 소리도 들을만 한다. 음악을 안 듣는다. 차라리 딸딸이를 그만 한다던가 라면을 안먹는다든가 하는게 생리적인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참 별 것도 아닌게 부끄럽다. 담배를 끊으면 되게 일상 적인 일이라 이해가 가는데 음악을 그만 듣고 있어라니.
얼마 전에는 엔하위키에서 여러 마약들을 찾아 읽었다. LSD가 인상 깊었다. 마약의 마짜는 악마할때 마가 아니라 마취할때 마짜이다. 의존성이라는 것이. 또 전에 읽은 심리학 연구 결과, 선천적인 행복. 물질적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
또 얼마 전에는 그 모두가 싫어하는 선생님이 삶의 뜻이 뭐냐고 물었다. 다들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문뜩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 선배는 그 수업을 회상하며 그런 답을 원한거면 삶의 목표를 물었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해서 웃겼다. 아무튼 그런 삶의 목표나 뜻이 될 수 있는 것이 너무 손 쉬운 곳에 있다는 것은 참 별로인 것 같다. 포탈2처럼 재밌는데 금방 엔딩이라 아쉬운. 게다가 문제는 내가 이런 식으로 살면 자살은 못하고 좀 오래 살 것 같은데 이렇게 살다보면 한 5년쯤 후엔 부모님 돈을 쓰지 않고 벌어 먹어야 하는데 그 때 내가 무슨 일을 할찌 생각해보니 너무 답답한 것이다. 폭두직딩 타나카는 귀엽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일단 여기 지금 태어났으니 여기 지금 스타일에 맞게 피곤하게 많이 일해서 많이 벌고 조금 쓰며 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아껴서 나중에 행복하자는거 지금 와우 안하고 밥 많이 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나중에 좋은데 취직해 돈 많이 벌고 이쁜 몸매로 게이와 이성에게 인기가 많고 그러는거 잘 모르겠어서.
흐리든 맑는 하늘의 모서리를 찌르는 회색 건물들의 뾰족한 가장자리를 보는게 좋다. 얼마 전에는 아래를 바라보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좋은 음악을 듣는게 좋다. 곧 트윈쉐도우 핫칩 피오나애플 또 있었는데 뭔가 또 기다려지고 또 좋은게 나오고 귀여운 아이들이 매일 태어나고. 한글학교에 일곱살 어린 고등학생이 들어왔는게 귀엽다. 내가 고등학생일때는 같은 반 아이들이 안 귀여웠는데.
좋은 것은 많은데.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 같아서.
사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고. 나는 항상 좋으니까. 주위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부모님은 돈을 버는데 신경이 씌여서 항상 힘들고. 나는 잠을 많이 자서 머리가 아프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다 아이들과 흑인들이 나오고. 나의 발 밑에서 나오는 반중력은 참 다루기 어렵다.
기담이라는 시집을 읽었다. 한국어 시는 재밌다. 절대적으로 라임이 없어서.
까칠한 스웨터와 좁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차분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
모자는 압박감을 준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왠지 압박감이 이런거구나 싶어서 좋다.
아서덴트가 펜처치와 공중섹스를 하는 것이 참 좋았다.
이 새끼는 섹스도 안하나? 여자랑 섹스하고 싶은 마음이 없나? 씨발 나는 에어 섹스한다! 통쾌함이.
사실 히치하이커의 첫 책들은 살짝 위화감이 있었다. 전쟁같은 급박한 상황 아니고선 사람들은 어디서나 섹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트릴리언과 자포드는 연인이 아닌 것같이 서로 애정표현도 없었고. 섹스랑 관련이 없는 장르지만 인간들이 나오는 이상 섹스가 없으면 위화감이 생긴다. 비자연적이라.
섹스하니까, 붉은 여왕도 읽고 있다. 번역인지 원작인지 가끔 어렵다. 생존이나 생태보다 성선택쪽이 훨씬 어렵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으로 보기가 참 쉬웠는데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적인 전쟁같은 것은 어렵다. 핵 밖에 존재하는 유전자. 갈수록 남자라는게 싫어지고.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한건가 싶고.
죽고싶다. 죽고싶지 않을 때가 온다면 그건 분명히 죽고 싶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기보단 죽고싶다는 생각을 못할만큼 급박한 상황일 것 같다. 얼굴을 만지는 것은 애정 결핍이라고 해서 얼굴도 덜 만지게 되었다. 나는 애정결핍이랑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 그런 평판이 얼굴을 만지는 것을 못하게 한다. 초콜릿도 안 먹는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지만 의식적으로 안하는게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죽고싶다고 하는게 자신을 구해달라는 신호라는 말을 접해서. 우울증이랑 연관되고 싶지는 않다. 자살은 꼭 할태지만. 남한테 죽고싶지 않으니까. 또 사는게 덧없고. 덧없고. 다 좋은데. 뭐가 더 좋은게 있다고.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죽고싶은게 항상인데 남한테는 그런 소리를 한번도 안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블로그에 적어야지. 나중에 OD로 죽으면 실수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아무래도 엘리엇스미스나 커트코베인처럼 아프게 죽고싶진 않다.
변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변호하자면 나는 항상 좋다. 넓은 우주가 좋다. 우리가 작은 행성에 아웅다웅하는건 안타깝지만. 아이들이 좋다. 우리반 아이들은 참 좋다. 사람들은 어떤식으로든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워질 가치를 잃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안타까운 사람도 좋다. 안타까우니까. 하지만 답답하고. 죽고싶은건 어쩔 수 없다. 뭔가 부족하거나 풍요로운건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력을 해서 풍요로워질 수 없고 아무리 소비적인 생활을해도 나는 부족한게, 부족할게 하나 없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것처럼 살고 싶다. 어짜피 그게 그건데 그런 식으로 사는게 주위 사람들 보기에 편하니까. 그래서 줄넘기도 하고 (맨발로 줄넘기를 하면 발바닥이 다친다. 까진다고 해야하나. 밀리는 느낌. 빨간색으로 아파진다.) 음악도 안듣고. 잠 자는 시간을 줄여서 와우를 하고. 공부하고 와우하고 일하려면 잠을 줄여야겠다. 싶다.